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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1) 제1장 제2장

출처: http://evangelical.tistory.co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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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연구를 위한 독서 일기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1) 제1장 제2장

그 동안 시간이 되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중 하나가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이다. 이미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에 있는 연구자가 이제야 ‘논문 잘 쓰는 방법’과 같은 주제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학문의 길에 제대로 들어선 것은 스스로 솔직히 고백할 때 고작 2~3년 남짓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나는 아직도 연구자라고 하기에 한없이 낮은 수준이다. 나에겐 아직도 기초가 필요하며, 나는 솔직히 아직도 사회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이미 논문 학기를 두 학기나 맞이하고 있는 내가 정작 논문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읽으면서 단번에 느끼고야 말았다. 아직 이 책의 삼분의 일 조차 읽지 못했지만,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면서도 예리하고 탁월하게 나이브하고 수준 낮은 연구자의 오해와 편견을 짚어내어 나와 같은 연구자를 부끄럽게 만들어주는 에코의 글솜씨와 학자적 수준은 단숨에 내가 논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더욱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나보다 나은 수준과 처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혹시나 나처럼 논문 작성에 기초적(?)인 어려움과 혼란을 겪는 사람이 계시다면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권한다.

 

제1장 졸업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필요한가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은 현학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바로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논문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정말 실용적이면서 통찰력 있게 에코는 글을 썼다.

에코에 따르면, 논문은 기본적으로 편집 논문과 연구 논문으로 나뉜다. 편집 논문은 이탈리아의 경우 <석사> 논문에서 주로 선택되고, <연구 논문>은 Ph.D.로 불리는 박사 논문에서 주로 사용된다. 편집 논문은 특정한 테마에 관해 출간된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학의 경우라면, 담론 분석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이에 반해, 연구 논문은 단순히 기존에 출간된 저술들을 비판적으로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특정한 주제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독창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문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오직 부자 학생들만의 특권이었다.”(24쪽)는 사실이다. “얼마 전”이라는 것이 과연 언제를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를 가리킨다면, 학문이란 엘리트주의적 선상에 있는 것이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 학문 세계에 끼어든 것은 바로 이 “얼마 전” 사람들이 볼 때 참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소위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다.)

논문의 테마와 관련하여 에코는 “정말로 어리석은 테마란 없”(27쪽)다고 조언해 준다. 어떤 테마에서도 유용한 논문이 나올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테마보다는 그 논문에 수반되는 작업의 경험”(26쪽)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에 관련된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하지 않았다. 도리어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라는 그리스의 고전 철학자에 관한 철학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마르크스의 사고를 훈련시켰고 후에 정치경제학 저술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상당히 위로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석사 논문으로 준비하고 있는 ‘난민 인권(human rights for refugee)’은 평생 연구할 만한 메인 테마가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박사 과정에 지원하게 된다면, 나는 난민 인권이라는 주제로 지원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리어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후기기독교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의 ‘세속화(secularism)’ 경향에 대한 연구를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내가 준비하는 ‘난민 인권’이라는 주제가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에코의 조언을 통해 이 주제를 잘된 방법으로 써낸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훈련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에코는 지도 교수가 (일방적으로) 부여해 준 테마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테마를 제공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교수님을 통해 알지 못하던 분야에 관해 추천을 받고 석사 학위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선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에코가 지적하는 것처럼 “연구의 방법론적 범주가 지원자의 경험 영역에 해당할 것”(28쪽)의 문제다. 아직 방법론은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양적 방법론 보다 역사적-구조적 방법론이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왜냐하면 이 분야는 나에게 기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박사 논문 주제는 이번의 경우처럼 선정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제2장 테마의 선택

에코는 단일 주제 논문과 파노라마식 논문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이 설명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좀더 구체적이고 범위가 좁게 논문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에코의 설명은 나의 시각을 넓혀주고 논문을 좀더 현실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안목을 제공해 준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에코가 ‘노련한 판단’이라고 부르는 내용인데, 만약 “학생이 아주 구체적인 테마에 대해 진지하게 논구했다면, 대부분의 심사 위원들이 모르는 소재를 다루는 것이 된다.”(30쪽)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번쩍하는 경험을 했다. 심사 위원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만약 내가 논문을 다루게 된다면,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일반적인 논문 연구 원칙에 대한 지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학생인 나 자신이 심사 위원들 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기존에 잘 알려져 있는 주제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 주제에 대해 심사 위원들이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준비하는 ‘난민 인권’에 관하여는 연구된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특히 사회학에서는 거의 다룬 적이 없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내가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를 충분히 잘 활용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겠다.)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지만,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가 되라는 에코의 조언은 매우 유익했다. 논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특정한 인물의 이론으로 국한시키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 예를 들어 에코가 언급한 것처럼 ‘피아제에서의 지각의 문제’, ‘초기 하이데거에서의 존재의 문제’, ‘칸트의 자유 개념’ 등 이런 방식의 연구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피아제에서의 지각의 문제’가 아닌 ‘지각의 문제’를 다루려는 논문은 매우 어려우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이 에코의 설명을 통해 깊이 깨달아졌고 나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할 수 있었다.

또, 현대 저자들을 연구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려주는 지적도 유용했으며, 고전 작가의 손쉬움이(내용상 다루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설득력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외국어에 대한 조언도 유용했는데,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논문을 쓰면서 읽어야할 외국어 원전들이 있다면 이를 외국어를 공부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내가 두고두고 참고할 주옥같은 말들이다.

정치적 논문을 과학적으로 쓰라는 에코의 지적 또한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사실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논문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또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논문을 쓰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지향은 곧 학문적 엄밀함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편견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에코는 정치적 논문을 과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인문학이거나 사회과학이거나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도 논문은 ‘과학적 요건’을 충실하게 갖추는 것이 핵심적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도 자신의 이론은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주창하지 않았던가!

제2장 마지막에 ‘지도 교수에게 이용 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라는 매우 재미있고 도발적인 내용 또한 흥미로웠다. 스스로 교수이며, 지도 교수로서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가 마치 ‘양심 선언’ 또는 ‘내부 고발’을 하듯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지도 교수를 모시고 있는 나에게 즐겁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나의 지도 교수님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차라리 좀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