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에 물 주기/저장공간 /keeping..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2) 제3장 ~ 끝 (최종회)

사회학 연구를 위한 독서 일기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2) 제3장 ~ 끝 (최종회)

2009. 4. 7. 화. 오후 7시 51분

 

지난 번 ‘독서 일기’에 이어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본 책을 통해 나는 논문을 쓰려고 하면서도 마치 논문 쓰는 법을 다 알고 있는 듯이 행동했던 지금가지의 무책임함과 게으름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게다가 무언가 닫힌 듯 열리지 않던 논문 연구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부 시절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그래서 논문 작성의 기본기를 충실하게 학습했더라면 지금쯤 시간을 많이 단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을 가져본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더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난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자료 조사와 참고 문헌에 대하여


제3장에서 에코는 자료를 조사하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아마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논문은 주제와 분야를 잡고 기본적인 자료 조사가 끝나면 상당 부분 진도가 나간 것과 다름없다.

에코는 우선 1차적 출처와 2차적 출처를 명확하게 구분할 것을 요청한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1차적 출처와 2차적 출처가 미리 구분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에코에 따르면,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연구대상과 주제에 따라 이와 같은 구분이 달라지게 된다.

어떤 테마를 연구하기로 결정할 때, 주로 연구자 자신이 출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자료의 이용가능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1차적 출전은 직접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주제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에코는 말한다. “왜냐하면 비평적 문헌에 대해서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중요한 것은 모두 읽어야 하며, 출전은 직접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72쪽)

에코의 이 말은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논문을 평가하는 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논문들에는 출처들이 아주 정확하게 확인되었으며, 또한 확인 가능한 범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분명하게 학위 지원자의 능력에 합당했고, 또한 지원자는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지 잘 알고 있었다.”(72쪽)

출전에 있어서, 번역의 문제 : 직접적으로 에코는 번역과 선집은 출전이 아니라고 말한다. 번역은 제한적 도구이며, 선집은 최초의 접근에 사용되는 정도로만 유용하다. 또한, 다른 저자들에 의한 설명 역시 출전이 아니다. ‘재인용’과 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합리적 예외가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수적이고 간략한 인용에 그친다면 진지한 학자에 의해 인용된 것을 재인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원문을 직접 본 것처럼 재인용을 해서는 안된다.

참고 문헌을 조사할 때, 기본적으로 도서관을 통한 예비 연구가 바람직하다. 도서관에는 저자별/주제별 도서목록이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도서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참고 문헌 목록이나 도서관의 사서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지침이 된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문헌 목록이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에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나 사서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책의 특정한 페이지를 통해 연구자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그 외 도서관 상호대차,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다른 도서관으로부터의 대출 등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에코는 참고 문헌을 조사할 때, ‘카드 정리’를 사용하도록 권한다. 카드의 종류는 독서 카드, 참고 문헌 카드가 있다. 에코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인용과 참고문헌 규칙을 나열하고 있다. 이탈리아 대학생 및 연구자를 대상으로 작성된 책이기 때문에 실제로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규칙은 통용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참고 문헌 서지 사항의 명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필자는 약 일주일 안에 예비 조사를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 참고 문헌 목록을 기본적인 자료들을 중심으로 만들 수 있고, 논문의 가능성과 방향을 대강 짚어낼 수 있게 된다. 기본 참고 문헌 조사가 끝나면 지도 교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예비 조사를 통해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자료가 부족한 지방 도서관에서도 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 부유한 학생들을 위한 논문이란 없다.”(133쪽)고 에코는 말한다.

 

논문 작성에 관하여

 

제4장에서 에코는 논문 작업 계획을 잡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논문 작성을 위한 계획은 기본적인 것이다.

가설적 차례는 140페이지에서 언급된 것을 인용한다.

1. 문제의 상황

2. 이전의 연구들

3. 우리의 가설

4.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자료들

5. 그 자료들의 분석

6. 가설의 증명

7. 결론 및 이후의 연구에 대한 언급

작업 계획을 세운 이후, 서문의 초안을 작성한다. 서문과 차레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어짜피 다시 쓰게 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지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서문을 쓰면서 스스로 무엇이 중심인지, 주변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문을 작성하면서 이와 같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논문 주제를 재고해야 한다.

카드 작성과 메모 작성에 대해 에코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밑줄은 책을 개인의 것으로 만든다.”(155쪽) “책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책들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사용함으로써 존경하는 것이다.”(157쪽) 이 말은 적어도 내가 아는 어떤 분(?)의 견해와 정확하게 반대가 된다.

독서 카드의 작성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167쪽)

1. 정확한 참고 문헌적 표시

2. 저자에 대한 정보

3. 그 책 또는 논문의 간략한(또는 긴) 요약

4. 자세한 인용문

5. 여러분의 개인적인 견해

6. 카드 위쪽에 색깔이나 약자로 분류 표시(작업 계획과의 연관성)

에코는 ‘학문적 겸손’이라는 주제를 이 장 마지막에 언급하는데, “가장 훌륭한 생각은 유명한 저자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169쪽)에 “학문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원칙적으로는 어떠한 추전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171쪽)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제5장에서는 원고 쓰기에 대해 설명한다. 우선 논문은 지도 교수나 심사 위원만을 실제로 대상으로 하게 되지만, 글을 쓸 때 많은 다른 사람들(인류 전체)이 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대상 학문의 규범적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용어들이 아닌 이상, 사용되는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인 규칙으로서 우리 논의의 핵심 범주로 사용된 모든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174쪽) 또,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문장을 쓸 때는 긴 문장을 가능한 쓰지 말고, “지나치게 많은 대명사와 종속 문장들을 생략”(176쪽)해야 한다. 최초의 원고를 쓸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쓰라.”(179쪽) 그러나 그 내용이 테마의 중심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주나 부록에 넣어야 한다. 독자로 지도 교수를 활용하고, 생략 부호, 감탄 부호, 반어적 표현 등은 가능한 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용어를 처음 도입할 때는 반드시 그 용어를 정의해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그 용어를 포기해야 한다. (용어를 자주 창조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이다.)

인용의 종류는 그 본문에 대해 해석하기 위해 하는 인용과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는 인용이 있다. 그러나 인용이 반 페이지를 넘어간다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권위있는 저자 논문의 인용이 중요하다.

주는 인용의 출처와, 참고문헌 표시, 권위자를 통한 자신의 주장 증명, 본문의 주장을 확대, 본문의 주장을 수정, 도움을 받은 저자에게 빚을 갚는 의미 등을 위해 필요하다. 주는 절대로 길어져서는 안된다.

요즘 논문에서 많이 보이는 저자-연도 방식의 주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같은 해에 한 저자에 의해 여러편의 논문이 작성된 경우, 연도에 a와 b 등을 붙여 구분한다. 저자-연도 방식의 주는 ①“논문의 예상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매우 동질적이고 전문적인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 ②“근대적인 참고 문헌, 또는 최소한 지난 두 세기 이내의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 ③“박식하고 과학적인 참고 문헌이어야 한다.”(이상 210쪽)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에 대해서는 참고 문헌이나 출전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감사의 글을 작성하는 것도 필요한데, 지도 교수가 경멸하는 학자에게 감사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지도 교수의 입장에 따라 참고하지 말아야할 학자가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며 현실적이고, 하지만 의아스러운 지침이다.)

에코는 이 장의 마지막 결론을 상당히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끝맺는다. “X라는 테마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누구도 그 테마에 대해 그토록 명료하고 완벽하게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다.” “……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살아 있는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이상 218쪽)

제6장은 최종적인 원고 작성에 관한 설명이다. 여기는 그다지 많은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탈리아 상황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가능한 강조를 해서는 안된다. 세 줄을 넘지 않는 인용은 인용 부호 안에 넣어서 본문 안에 넣고, 그 이상은 따로 문단을 구분해서 인용한다. 그 이외의 모든 기호들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은 ①“참고하고 있는 저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②“그 저서를 찾기 쉽도록 해준다.” ③“졸업하고자 하는 학문의 관례들에 친숙함을 보여 준다.”(이상 243쪽)

이제 제7장 결론이다. 에코는 논문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다는 의미이며, 논문은 마치 돼지와 같아서 버릴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251쪽) 다음의 조언도 역시 나에게 매우 의미심장했다. “만약 여러분이 스포츠처럼 즐겁게 경기를 한다면, 훌륭한 논문을 작성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의식(儀式)이며 관심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출발점에서 패배한 셈이다.” “대개 논문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지 논문이 끝날 순간만을 생각한다. …… 그러나 논문이 잘되었을 경우에는 논문이 끝난 다음에 엄청난 연구 의욕이 솟아나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이상 252쪽) “만약 여러분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연구에 몰두한다면, 잘 쓴 논문은 전혀 버릴 것이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여러분이 진지하고 엄격한 과학적 연구를 한 맨 첫 번째가 될 것이며, 그것은 결코 간단한 경험이 아니다.”(이상 253쪽)

‘인권’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려하는 내가 갖고 있던 태도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지적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부록으로 역자가 첨부한 “국내 학위 논문의 체제와 작성 방법”이 유용하게 실려 있다. 나머지는 자료의 가치가 있지만, 재미있던 사실은 bibliography와 reference의 차이점이었다. bibliography는 “직접적으로 인용된 문헌만을 가리키는” 말이고, reference는 “논문을 쓸 때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및 기타 자료(면담, 강연, 음반, 영화 필름,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그림 등)를 포괄하여 나타내는”(이상 292쪽) 것이다.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단지 유희나 지식의 획득만이 아닌, 인생이 바뀌거나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문학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과의 조우는 불 꺼진 방에서 출구를 찾다가 빛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모르는 분야와 주제가 있을 때, 그 분야에 대해 최소 5권의 주요 저작을 읽는다는 어떤 분의 독서법 조언처럼, 책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막상 답답해 하던 문제에 대한 책을 진작 찾아나서지 않았던 것이 이번만큼 후회가 되는 경우가 없었다. 1년만 먼저 이 책을 발견했어도 상당 부분 시간을 아꼈을 것이리라. 이 책에 이어 몇 권의 책을 더 읽으면, 논문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용기와 지침을 얻게 될 것 같다. 이미 충분한 희망을 얻었다.